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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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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2 10:5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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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분석]CEO 죽이기
여기 한 기업이 있습니다. 오랜 매출 부진과 재무적 부실,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로 인해 자포자기 하다시피 하고 있는, 오늘 망하나 내일 망하나 뭐 별 큰 상관없을, 대우그룹이 살아있었으면 친구하자고 그랬을 그런 회사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때, 저 멀리서 검은 망토와 검은 가면 차림의 협객이 홀연히 나타나, 마치 조로(또는 턱시도 마스크일 수도 있겠군요)처럼 파산을 협박하는 악당들을 물리치고 죽기 일보직전의 기업을 살려냅니다. 그리고 뽀대나게 씩 웃으며 석양속으로 사라지...지는 않구요, 스톡옵션이나 엄청난 보너스라는 융숭한 대가를 받고 거기에 한동안 눌러 앉죠.
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투자자들이 정말 정말 듣기 좋아하는 그런 스토리죠. 이런 영웅적 CEO가 기업구출을 위해 출몰했다는 것만으로도 주가는 갑자기 확 뛰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1996년 다운사이징의 귀재로 불리던 ‘양복입은 람보’ Al Dunlap이 Sunbeam사의 CEO로 선임되자 하루만에 주가가 무려 50%나 뛰었고, 또한 지난 여름 Tyco사에 명망 높은 Motorolla의 고위간부이던 Mike Breen이 CEO으로 임명된 즉시 이 종목 또한 46%나 후끈 달아올랐구요. 여기 한국에서도 김정태 회장이라는 우뢰매를 능가하는 한국형 슈퍼맨이 국민은행을 구하러 나타나면서 67억원의 스톡옵션 또한 챙기게 되었죠.
널리 알려진 대로, Dunlap 체제의 Sunbeam은 엄청난 실패였죠. 회사의 실적을 개선시키지도 못한 채 그는 회계장부 가지고 장난쳤다는 의혹마저 받으며 해임당했습니다. 이런 식으로의 금방 사그라드는 반짝 CEO효과는 주식시장에서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7S 이론으로 유명한 Tom Peters가 뽑은 11개의 위대한 기업들 중 외부 CEO를 영입하여 성공한 케이스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렇지만 CEO의 중요성에 대한 증권가의 인식과 기대는 좀처럼 줄지 않는군요. 특히 요즘과 같이 기업고위간부들의 비리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Wall Street의 애널리스트들과 기관투자자들을 설문조사 해본 결과 90%가 CEO의 평판이 좋은 회사를 투자자들에게 추천하겠다고 했는데요, 이는 5년 전의 70%보다 월등히 높아진 수치입니다.
Harvard 대학의 Rakesh Khurana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아주 흔한 심리적 현상이죠. 바로 복잡한 문제들을 한 개인적 변수에게로 수축하여 간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돈과 믿음을 CEO라는 한 사람에게 모조리 맡긴다는게 논리적으로 맞는 것일까요? 과연 CEO한테 도박을 거는 것이 승산 있는 게임일까요?
이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면 일단 다음 질문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과연 CEO가 기업의 주가나 이익창출능력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가치투자자의 대명사인 Warren Buffet은 좋은 경영진이 본질적으로 구린 사업에 진출했을 때, 기업은 결국 평판 하나만 믿고 먹고 살려는 것이라는 혹평을 했습니다. 이 밖의 많은 비판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소위 ‘CEO 효과’를 수치적으로 나타내고자 노력했고, 한 연구결과는 CEO가 자신의 임기 동안 창출하는 수익은 총 ROA의 44%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연구결과는 2차적 검증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무리 이런 초인적 CEO들의 신화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유혹해도,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 ‘CEO 효과’라는 것이 거시적 경제전망이나 산업별 현황 정도의 중요성 밖에 없다고 합니다. 회사의 본질적 구조가 최고 경영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죠. 최근 California 주립대학의 Margarethe Wiersema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6년과 1997년 사이에 임용된 83명의 CEO(이 중 40%가 기업구출을 위해 외부에서 영입됨)의 성적표를 볼 때 그들의 2년 뒤 경영실적은 전혀 뚜렷한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중 대다수의 종목은 전반적 호황에도 불구하고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죠. 또 Dartmouth 대학의 Constance Helfat 교수의 연구는 외부영입 CEO의 경영실적이 승진한 내부인사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합니다. 즉 백마 탄 기사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럼 도대체 기업분석을 할 때 바람직한 CEO 상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할까요? 요즘 Wall Street의 추세는 ‘카우보이식 영웅형’ 보다는 ‘경찰식 앤티영웅’을 찾는다고 하네요. 즉 정석대로 묵묵히 나아가면서 억지로 튀려고 하지 않는 경영자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은퇴한 후 이어받을 미래세대의 역량있는 경영진을 키워나가는 system을 창조하는 그런 CEO가 필요합니다. GE의 Jack Welch, Wal-Mart의 Sam Walton, Southwest Airlines의 Herb Kelleher 등은 다년간 자신들의 회사 내에 합리적인 경영체제와 교육사업을 확립시켰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죠.
결론적으로 CEO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이 것을 너무 부각시키려는 논리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부실한 기업에 유명한 CEO가 해결사로 들어왔다고 바로 전망을 낙관적으로 바꾸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말이죠. 지붕에 빵꾸난 집에 페르시아 카페트 깔아 봤자, 집도 카페트도 다 망치는 것 뻔하지 아닌가요? 
※새 보스의 출현: 당신의 기업에 새 CEO가 왔을 때, 과연 당신은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1.진실한가?
제대로 된 리더라면 조직내의 문제점에 대해서 아무리 끔찍한 사안이라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장미빛 미래전망 만을 내놓는 그런 CEO는 보통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
2.기본이 되 있나?
새로운 CEO가 오기 전에 혹시 회사 내에 회계 스캔들 등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는 않았나? 만일 그렇다면 적어도 1분기 이상은 기다려본 후에 투자여부를 결정하자.
3.익숙한가?
새로운 CEO가 이 기업이 속한 산업 내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 이게 비록 성공의 필수 조건이거나 보장은 아니지만, 이점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4.충성심이 있나?
새 CEO의 보수구조를 잘 살펴보자. 혹시나 첫 해의 보수가 엄청나게 높고 실적과는 관련 없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안 좋은 기업일수록 능력있는 경영진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매력적인 보수를 미끼로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럴 경우 이 CEO는 돈만 보고 행차하셨을 수도 있다는 점 기억하자.
서울대 투자연구회 박인수, a.k.a. ‘외국인 투자자’
* 이상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8-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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