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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25 10:5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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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기획 | | 서울대투자연구회 6기 이지선 (경제학부 99학번) | (2003. 05. 24. 발표) |
광고?!
미국 수퍼볼 경기 중계시의 TV 1분 광고료는 40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지요. 월드컵 같은 세계적 스포츠 대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고작 2-3미터짜리의 광고판 하나가 얼마나 큰 광고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선영아 사랑해’ 이후 또 한 번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킨 티저 광고 ‘June’에까지 이르게 되면, 이제 광고는 단순한 홍보수단의 차원이 아니라 오랜 기간 극비리에 진행되는 수백 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되어 제품 자체의 사활을 가르는 중요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말하듯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기업들에게 있어 광고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 요소라면,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광고산업도 같이 커 나갈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생각해낼 수 있지요. 실제로 한국의 광고시장 규모는 1990년 2조원을 돌파한 이후 불과 10여 년이 지난 지난해 6조원을 넘어서는 급성장을 보였습니다. 이는 GDP의 약1%정도인데, GDP대비 광고매출 비중이 미국의 경우 2-2.5%, 일본은 1.5%임을 감안한다면 아직도 국내시장은 성장할 여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광고산업의 중요성과 성장성은 일찌감치 많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업계 선도업체인 제일기획과 LG애드의 지난 5년간 per는 최저 5배에서 최고 26배 사이를 움직였고, 지금도 두 회사의 per는 10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광고산업이라는 것이 경기에 매우 민감하며 가시적인 진입장벽이 없는 만큼 잘나가는 기업이라고 해서 미래가 꼭 밝은 것만도 아닙니다. 따라서 대개의 가치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저평가형 알짜배기 기업들을 찾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광고산업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기업이 살아있는 한 광고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급성장을 거듭해온 광고시장의 강자가 누구이며, 최근 성숙기의 문턱에 이르러 심화된 경쟁에서 살아남을 기업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 흥미있지 않을까요?
한국 광고계 - 인하우스 체제
‘인하우스 체제’란 말 그대로 대기업 계열사들이 동그룹에 속한 광고 회사에 광고를 맡기는 것입니다. 제일기획은 삼성의 계열사이며, LG애드와 금강기획, TWBA는 계열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각각 LG, 현대, SK그룹의 광고수주를 도맡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는 2위군의 기업들이 원래 각 대기업그룹의 계열사였다가 최근 2-3년 사이 다국적 광고대행기업에 인수된 이후에도 기존의 인하우스 수주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2년 말 기준 제일기획의 삼성계열사 물량 취급액은 전체의 65%에 이르며 LG애드 역시 비슷하거나 이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외국계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경쟁 프리젠테이션 방식을 택하는 광고주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인하우스 체계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제일기획이 현대자동차 아반떼 XD의 광고 대행권을 따낸 것나 오리콤이 LG애드를 제치고 LG가스의 브랜드 기업이미지 통합 사업을 수주한 것 등이 좋은 예죠.
당분간 이러한 움직임은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라는 신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삼성계열사의 안정적 수주 확보는 여전히 제일기획의 최대 강점으로 남아있으며, 영국의 세계적 광고대행회사 WPP가 인수한 LG애드 역시 인수 협상 당시 LG그룹 계열사 광고 수주 확보에 대한 계약이(물론 그랬다고 공개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니까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장기적으로 볼 때 인하우스 체제가 설 자리는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시장이 성숙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과정에서 결국 살아남는 것은 능력 있는 기업들 뿐이니까요.
세력 재편? – 토종 VS 외국계
현재 광고계 상위 10개사 중 제일기획과 대홍 기획을 제외한 8개 사는 모두 외국계 회사가 대주주로 있습니다. 작년 12월 업계 2위인 LG애드가 영국의 WPP에 인수됨으로써 외국계 광고대행사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49.5%로 껑충 뛰어올랐지요. 외국계의 98년 시장점유율이 7.8%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이는 괄목할만한 변화입니다.
외국계들의 한국시장 진출은 일단은 국내광고시장의 급성장에 기인합니다. 파이가 커지니 먹으려고 달려드는 이들도 많아지는 거죠. 게다가 한국시장의 광고대행 수수료는 10~15%에 이르는데 이는 해외 선진국의 5~6%대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로 당연히 외국계 회사들에게는 매력 만점의 시장일 수 밖에요.
중요한 것은 외국계 회사의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는 것입니다. 올해 1분기에 제일기획의 총광고 취급고는 210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 줄어든 반면 LG애드는 국내 TV광고시장에서 약진을 보이는 등 내수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일면 제일기획의 위치가 불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일기획의 취급고 감소는 전쟁과 사스의 영향으로 침체된 해외 경기를 의식한 삼성전자의 해외광고 수요 감소에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현재 제일기획의 경쟁력과 수요확보의 안정성을 고려할 때, 외국계 기업의 한국시장 진출이 직접적으로 제일기획의 시장점유에 타격을 줄 가능성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희박하다고 봅니다. 사실 외국계 기업과의 경쟁은 제일 기획이 앞으로 나가갈 방향을 시사해준다는 면에서 더 의의가 있지요.
고객과 같이 커 나간다
제일기획은 10대 광고주 중 절반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상위 5개 사 중 TWBA가 맡고 있는 SK텔레콤을 제외한 2위부터 4위를 독식하고 있지요. 고객들의 덩치가 크기 때문에 올 1분기처럼 삼성전자가 250억의 광고비를 2분기로 이월하는 경우가 생기면 곧 회사의 매출이 눈에 띄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덩치’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이번에 매트릭스2가 개봉하면서 특히 한국 사람들의 관심을 끈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매트릭스 폰’이지요. 영화 매트릭스2에 나오는 핸드폰이 바로 삼성전자의 애니콜 제품인데, 한국 제품이 세계적 영화에 당당히 중요 소품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도 뿌듯하지만, 그 못지않게 이로 인해 애니콜이 얻을 수 있는 직간접적인 광고효과도 엄청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간접적 광고효과와 더불어,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이용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 바로 제일기획입니다. 삼성전자는 ‘Matrix2-reloaded’와 ‘Matrix3-revolution’의 프로모션 마케팅 계약을 모두 따 냈으며, 삼성전자가 해외 광고물량의 30%를 제일기획에 맡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매트릭스 프로모션은 – 영화의 흥행 성적이 주요 변수가 되긴 하겠지만 – 제일기획에 있어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건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상대로 된다면 1분기의 부진은 씻고도 남는다는 말입니다.
삼성전자가 성장함에 따라 제일기획도 같이 커나갑니다. 현재의 우량 고객을 계속 확보하는 한 제일기획 역시 위험할 이유가 없습니다. 경기를 타서 위태로워 보일 뿐, 잠시 위기를 벗어나면 한층 더 성장해 있는 것이죠.
결국 남는 건 1,2위 뿐 - 국내시장 강자의 자리를 지킨다면!
그렇다면 제일기획이 우량 고객들과의 파트너쉽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답은 일단은 ‘그렇다’이고, 장기적으로는 ‘아직 모른다’입니다.
제일기획은 지난 30년간 광고업계의 선두를 지켜왔으며, 현재 18%인 시장점유율도 소폭이지만 꾸준한 성장세에 있습니다. 2위인 LG애드가 11%, 3위 그룹의 점유율이 6%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일단은 안정적 위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광고업에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합니다. 과거 인하우스 체제가 확고할 때 이 말은 같은 그룹내 계열사들의 광고수요를 독차지하는 광고대행사들의 행태를 꼬집어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하우스 체제가 서서히 무너져 가는 지금에도 규모의 경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건재합니다.
최근의 광고는 단순한 매체광고 제작이나 대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모션 개념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일방적 홍보에서 한층 나아가 고객과 직접 마주하는 판매 촉진까지 광고사가 맡아서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해낸다는 것은 반짝이는 아이디어- 광고 업계에서 ‘크리에이티브’라고 부르는-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금력과 노하우, 선진 시스템을 갖춘 선도업체들에게 더욱 유리하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산업 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덩치 큰 두세 놈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1위를 고수하는 제일기획에 있어서 치열한 경쟁상태에 있는 국내 광고시장은 선두의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할 기회인 셈입니다. 규제가 완화되고 시장이 개방되면 경쟁력 있는 업체가 쾌재를 부르듯이, 인하우스 체제가 무너지고 시장에 경쟁자가 많아질수록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선두그룹입니다. 현재의 고객을 빼앗길 위험보다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당분간 국내시장에서의 제일기획의 위치는 그리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미래로 돌려보면, 제일기획의 앞날도 그리 훤하지만은 않습니다. 문제는 제일기획의 생존이 국내시장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존전략 – 글로벌화
현재 제일기획이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화 계획은 사업 확장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단계라고 봐야 합니다. 고객 기업이 커나감에 따라 광고대행사 역시 같이 커나갈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같이 커 나가야만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향후 광고업계의 선택은 국내시장이냐 해외시장이냐가 아니라 둘 다 갖느냐 둘 다 포기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다시 매트릭스의 예를 들어봅시다. 만약 제일기획이 매트릭스2의 프로모션 마케팅을 수행할만한 역량을 갖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삼성과의 파트너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일기획 역시 세계적 기업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 고객인 삼성의 성장은 기회인 동시에 혹여 발맞춰 나가지 못할 경우 다른 우량 고객들도 차례로 잃어버릴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도 한 것입니다.
제일기획이 세계 각지에 둔 14개의 법인에서 최근 현지 인력을 확충하고 직접 제작 비용을 늘리는 등 공격적 경영을 추진하는 것이나 고급인력 확충을 위한 인건비 지출을 증가하는 등 글로벌화를 서두르는 움직임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2-3년동안 판관비 지출의 증가로 영업이익률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관건은 당장 몇 년의 수익률 희생보다는 이을 통해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최근 조심스레 외국의 다국적 광고대행사의 제일기획 인수 가능성을 점치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제일기획의 자체 글로벌화가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국내시장 1인자의 위치를 확고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6조원 규모의 한국 광고시장은 이미 세계 10위권에 들어설 만큼 양적으로 성장했으며, IT등 첨단 분야에 있어서는 기업이나 소비자의 수준은 세계 최고수준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러한 한국 시장을 대표하는 위치라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투자대상으로서의 제일기획
투자 대상으로서의 제일 기획은 두 가지 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per수준이 높다는 것이죠. 광고업계의 per가 일반적으로 제조업보다는 높기 때문에 동종 업계 평균보다 과하게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기본 가치에 비해 시장의 평가가 높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좋게 볼 수 없는 사실이죠.
다음으로 주가의 변동폭이 큽니다. 이는 광고업 자체가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일 뿐더러 광고 업계 내에서의 경쟁 역시 치열한 상태라 단기적인 시장 상황이나 계약 수주 발표에 따라서 산업은 물론 개별 기업의 전망이 엎치락 뒤치락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제일기획의 선두 위치가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최근 LG애드의 급성장이 바로 제일기획의 주가 하락으로 연결되는 상황으로 볼 때 1위기업이라고 해서 주가도 잘나가기만 하리라는 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반면 무차입 경영과 풍부한 현금창출 능력 등 건전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한 면입니다. 과거 이러한 현금창출력이 삼성생명이나 e삼성 주식 인수 등 계열사의 부실을 떠안는 데 쓰임으로써 투자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사례를 남겼지만, 최근의 인하우스 체제 붕괴와 계열사의 독립적 경영이 존중되는 추세로 보아 앞으로는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수한 영업력이 회사의 성장과 투자자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면 제일기획의 주식도 현재보다는 한층 더 믿을만한 투자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상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8-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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